그의 소설에서는 다음 장면을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쓰는 하루는 놀랄 만큼 똑같았습니다.
매일 같은 시각에 시작한 하루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낯선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지고, 평범한 일상에서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런 소설을 쓰는 동안 하루키의 생활에는 예상 밖의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장편소설 집필을 시작하면 그는 오전 4시에 일어났습니다.
아직 주변이 조용한 시간에 자리에 앉아 5시간에서 6시간 동안 글을 썼습니다.
점심 무렵까지 그날의 집필을 마치고 나면 오후에는 10킬로미터를 달리거나 1,500미터를 수영했습니다. 때로는 두 가지를 모두 하기도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책을 조금 읽고 음악을 들었습니다.
밤 9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반복으로 만든 집필의 리듬
다음 날도 오전 4시에 하루가 시작됐습니다.
글을 쓰고, 몸을 움직이고, 책과 음악을 가까이한 뒤 일찍 잠들었습니다.
하루키는 장편소설을 쓰는 동안 이 일정을 매일 바꾸지 않고 반복했다고 말했습니다.
매일 새로운 기분을 기다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시작하면서 소설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상태를 만들었습니다.
한 편을 완성하려면 수개월 동안 이야기를 붙잡아야 했고, 작품에 따라서는 몇 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하루키는 오랫동안 글을 쓰려면 머릿속의 생각만큼 몸의 힘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오후의 달리기와 수영까지 일정에 넣으며, 다음 날 다시 책상에 앉을 수 있는 생활의 리듬을 만들었습니다.
하루 원고지 10장
하루키는 글을 쓰는 분량에도 기준을 두었습니다.
장편소설을 쓸 때 하루 목표는 일본 원고지 약 10장이었습니다.
글이 잘 풀려 더 쓰고 싶은 날에도 그 정도에서 멈췄습니다.
반대로 글이 잘 나오지 않는 날에는 어떻게든 정한 분량을 채웠습니다.

같은 속도로 쌓인 긴 소설
어떤 날에는 아주 많이 쓰고 다음 날에는 전혀 쓰지 않는 방식으로는 긴 작업의 속도를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하루 10장이면 한 달에 약 300장이 됩니다.
여섯 달 동안 같은 속도를 이어가면 약 1,800장이 쌓입니다.
물론 처음 쓴 원고가 그대로 책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고를 끝낸 뒤에는 잠시 쉬고,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고쳤습니다. 다시 쉬었다가 두 번째, 세 번째로 원고를 손보기도 했습니다.
매일의 일정은 단조로워 보였지만, 그 안에서 한 편의 긴 이야기가 조금씩 모습을 갖춰갔습니다.
새벽에 쓰인 10장이 다음 날의 10장과 만나고, 그렇게 쌓인 원고가 긴 소설이 됐습니다.
큰일을 시작할 때는 마음이 앞서기 쉽습니다.
첫날에는 많은 시간을 쓰지만, 며칠 뒤 다른 일정이 생기면 처음의 속도가 금세 끊기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과 분량은 다릅니다.
하루키는 오전 4시와 원고지 10장을 자신이 매일 돌아올 자리로 정했습니다.
한 번에 끝낼 수 없는 업무도 일정 안에 반복해서 자리를 마련하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의 작은 진행은 내일 같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흔적이 됩니다.
오래 이어가야 할 일이 있다면, 내일 다시 시작할 시간부터 정해보면 어떨까요?
ILJI TIME STORIES · 06



